자림두수 紫林斗數 Zarim Dou Shu

표면 안 으 로…

“그러나 그는 과연 언제까지 실패할까?”

‘변이 이야기’를 썼을 때 어떤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나.

변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는 유난히 쉽게 지치고 유난히 말이 많아서 번민 속에 있었다. 나는 자주 화장실을 오가며 속옷에 묻은 냉을 발견했는데, 몸 상태를 걱정하면서도 장난처럼 생각하고 싶었다. 흰자 같네. 노른자만 있으면 달걀 되겠네. 그런데 그럴 수가 있을까? (이미 이 지점에서 나는 건너뛰고 있었는데) 내가 달걀을 낳을 수 있을까? 내가 생산하는 것들은 전부 알맹이 없는 흰자들 뿐 아닌가. 냉처럼. 그럼 달걀은 뭐지? 아이 비슷한 건가?

하지만 이야기 안에서 변이는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난 뒤, 달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그때 변이가 원했던 게 아니다. 그래서 변이는 그것을 없앴다. (아이를 부름으로써- 아이를 틀 지음으로써 그것의 변화 가능성, 생명력을 단정하기) 그런데 그러고 나니 변이는 자신이 무언갈 원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이보다는 훨씬 손쉬운, 함께 놀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달걀(이라고 믿는다). 변이는 방에만 있다. 숲이 안인지 바깥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너무 지치고, 이미 너무 지쳤으니까. 변이에게는 방 안에서 할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에 천착한다. 기다리면 왠지 낳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도 갖는다. 그렇게 기다리고, 힘을 주고, 좌절하고, 서글퍼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 모습을 ‘나’가 보고 있다. ‘나’는 답답하다. 변이가 달걀에 대해서 실은 관심이 없다는 걸 안다. 그저 그럴 듯한 할 일, 허구일지라도 목표가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런데 그 실패가 진짜 실패이기 위해서 변이는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설사 그걸 얻는다 하더라도 변이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다. 아직은 모른다. 아직 달걀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변이가 떠난 건 변이의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의도였을까.

변이는 자신이 달걀을 낳을 수 없다는 걸 점차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게다가 ‘나’는 더 이상 변이의 모습을 보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변이는 ‘나’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달라고 한다. ‘나’는 변이를 ‘변이’라 부르고(변이가 아이를 죽인 방식과 동일하다), 변이는 숲으로 난 길로 나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 작업은 그 글을 쓴 지 2년이 지난 뒤 시작되었다.

변이를 떠나보내고 난 뒤에 (나는 ‘나’에게 이입하고 있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그렇게 밖에 결론을 내지 못했을까. ‘나’는 결국 편안해졌나. 같은 생각... 배설하고 난 뒤에는 한동안 그것을 잊고 지냈다. 정말 못쓴 글이라고 여겼다. 누구에게 보여주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고치기에는 그 자체로 이미 완결된 이야기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러다 문득 변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디쯤에 가 앉아 있을까? 여전히 달걀을 낳고자 하나? 소설에서의 ‘나’와는 달리(‘나’는 변이를 외면하고 자신의 생활에 집중하면서 변이를 떠나보내는 준비를 했다) 작업을 어찌됐건 이어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내가, ‘나’보다는 달걀에 천착하는 ‘변이’에 가까움을 느끼면서, 변이를 찾아 만난다면 변이가 내게 해줄 얘기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변이는 ‘나’의 집 옷장에 숲을 향한 길이 나 있다고 했다. 그 길은 어떻게 활성화될까 생각했을 때, 일단 옷장 문을 열어서, 어떤 신호를 발견해야 했다. 내가 냉을 보고 변이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처럼, 그 문의 길에서 냉이 통로를 활성화하는 기호라면... 하는 변태 같은 발상이 들었다. (변이 이야기는 여성인 내가 가지는 욕망과 연결되어 있다. 생명력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지만 나를 소진하기를 두려워하며 너무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가능성의 환상 속에 머물고 싶어하는...)

길로는 블랙홀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음산한 분위기와는 달리 실제로 만졌을 때는 부드러운, 강렬한 낙차감을 원했다. 부드럽게 손에 감기면서 돌아가는 블랙홀을 상상했다...
‘문을 열고 만지게 하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전시는 ‘보기’에서 그치기에 십상이니까.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면, 모든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 조각글로 힌트를 주고 사운드로 분위기를 조성한 뒤, 게임을 하듯 지시문을 제안하기로 했다.

2년 만에 꺼낸 ‘변이 이야기’에서 더해진 맥락이 있지 않았나.
변이는 돌연변이이자 소외된 이, 복제되고 반영하는 환영, 특별할 것 없는 존재다. 그리고 ‘나’ 또한 변이의 변이이자 변이의 변이의 변이의... 변이라는 걸 꿈속에서의 죽음 이후로 생각하게 되었다. 변이는 오염되고 더럽혀진 혼종이자, 그것 자체로 순수한 법칙이라고 여겼다. 그러자 이 작업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변이가 의미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반복되며 변화하는 존재, ,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제안이자 선언이었다.
  • 변이를 찾아서 / A HOLE-NU WORLD, 2022,
  • 카페트, 나무 옷장, 텍스트와 단채널 음향, 벨벳 천, 전도성 실, 뜨개용 실, 아두이노와 모터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시스템,
  • 음향: 2분 3초,
  • 오브제: 가변크기, 세운홀 구석에 설치